많은것이 바뀌게 된 대한제국

1897년(광무 원년) 10월 12일, 대한제국은 조선이 제국을 선포하여 세워진 전제군주제 국가로서 한반도에서 성립된 마지막 군주국이었습니다. 대조선국의 대군주인 고종이 1897년 칭제건원하여 황제를 선포하고 국호를 대조선국에서 대한제국으로 변경하였습니다. 이 국호는 미국 등의 수교국들로부터 공식 승인을 받았으며, 국제적으로는 영문으로 ‘Empire of Korea’로 불렸습니다. 과거 고려왕조가 역성혁명으로 무너져 조선왕조가 개국했던 것과는 달리, 대한제국은 조선의 국체를 이어받았습니다.

1895년에는 명성황후가 살해된 을미사변 이후 고종이 일본과 친일내각이 장악한 경복궁을 탈출하여 망명한 후,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동한 뒤에 친러내각을 수립하고 경운궁으로 환궁하여 황제로 즉위하며 대한제국을 건국했습니다. 동시에는 광무개혁을 통해 근대화를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제국으로부터는 지속적인 방해를 받았고,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로 인해 외교권과 경찰권을 차례로 강탈당했습니다. 이후 일본은 군사경찰훈령을 만들어 치안권을 빼앗았고, 외교권과 재정권을 빼앗았으며, 결국 1910년에는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대한제국이 경술국치로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대한제국이라는 정식 국호는 한반도의 삼한을 상징하는 말인 ‘한’과 제국을 의미하는 ‘제국’을 합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국호는 대한민국의 국호인 ‘대한’과 유사한데, ‘대한’은 한민족 전체를 나타내는 별칭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영어명으로는 처음에는 ‘Empire of Dai Han’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나, 나중에 ‘Korean Empire’나 ‘Empire of Korea’로 통용되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Korea’라는 단어가 이미 수백 년 전부터 한반도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대한제국은 외국인들이 ‘코리아’라고 부르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에, 영어 명칭에 있어서도 ‘Korean Empire’라는 용어를 피하려고 ‘Empire of Dai Han’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려 했지만, 결국 ‘Korea’라는 용어가 이미 국제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바뀌지 않았습니다.

대한제국은 황제 체제를 채택하면서 외국으로부터의 인식을 고려하여 정식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정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내외적인 정체성을 강화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외국의 압력과 침략으로 인해 대한제국은 일본의 강제병합을 겪게 되었으며, 대한민국이 나중에 이를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대한제국 초기의 체제는 영국식 입헌군주제와 독일식 입헌군주제 사이에서 논쟁이 있었으며, 이는 대한제국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독립협회와 근왕파를 중심으로 한 양심적이고 근본적인 논쟁은 독일식 입헌군주제와 영국식 입헌군주제 사이의 차이에 근거하고 있었습니다.

영국식 입헌군주제는 영국이나 일부 다른 국가에서 채택한 형태를 따르는 것으로, 군주가 정치에 개입하지 않고 국회가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는 형태였습니다. 반면에 독일식 입헌군주제는 독일 제국이 채택한 형태로, 군주가 일정 수준의 정치적 권한을 보유하며 국회와 공존하는 형태였습니다.

이러한 논쟁과 협상 과정을 거쳐 대한제국은 중추원을 설립하고 독립협회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식으로 근대화와 체제 정립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독립협회가 과도한 행동을 취하며 고종의 반발을 사게 되면서 독립협회는 해산되었습니다.

대한제국은 근대화를 위해 급격한 변화를 겪었으며, 정치, 경제, 군사, 사회 등 여러 분야에서의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강제적인 개입과 외세의 압박, 그리고 정치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일부 정책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1904년에 발발한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인해 일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대한제국은 일본의 강제적인 고문정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대한제국 초기의 체제는 영국식과 독일식 입헌군주제 사이의 논쟁을 거쳐 형성되었으며, 근대화를 위한 노력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의 변화와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외세의 압박과 정치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대한제국은 일정한 시기 이후에는 일본의 지배 아래로 들어가게 되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1905년 일본의 《을사조약》으로 인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되었으며, 일본의 한반도 지배가 사실상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대한제국은 사실상 멸망한 것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종은 독일 황제에게 조약의 부당함을 호소했지만, 독일의 직접적인 개입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고종은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보내서 일본의 부당한 행동을 세계에 알리려 했으나, 일본의 강압적인 대응으로 실패했습니다. 이 사건을 빌미로 일본은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습니다.

순종 즉위 후에는 일본의 강압적인 통치가 이어졌으며, 1907년에는 《정미7조약》 등의 조약으로 군대 해산 및 국가 권력 박탈이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1910년 《한일병합조약》으로 대한제국은 멸망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창립과 함께 대한민국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을 대한제국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하며, 대한민국의 국호를 정하고 임시 헌법을 제정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이때부터 시작되었으며, 대한제국의 의미는 이후 대한민국의 국가 발전과 함께 이어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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