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공화국

1945년 광복 이후, 모스크바 3상회의 협정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미소공동위원회가 개최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의 의견 대립으로 회담이 결렬되었고, 정부 수립 문제는 유엔으로 이관되었습니다. 1947년 11월 유엔 총회에서는 남북한 총선거를 통해 대한민국의 통일안을 가결했지만, 소련의 반대로 남한에서만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1948년 5월 10일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총선거가 실시되어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며,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 제국에 의해 멸망한 이후 1919년까지 한국 독립운동의 주류는 왕정복고 운동인 복벽주의였습니다. 그러나 3.1 운동 이후 독립운동의 주류는 공화주의로 급격히 전환되었고, 그 결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했습니다. 당시에는 중국식 번역어인 ‘민국’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대한공화국 임시정부’ 대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를 점령한 미군정과 소련군정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고, 임시정부의 국무위원들은 개인 자격으로 귀국했습니다. 임정 진영의 정당들은 하나둘씩 탈퇴하기 시작했으며, 1946년 1월부터 1948년 8월까지 정치단체로서 활동했지만, 김구와 김규식, 신익희의 과두제였고, 이들은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반대하면서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불참하여 정계에서 배제되었습니다.

1948년 5월 10일 제헌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제헌 국회는 이승만 계파와 신익희 계파의 협력으로 7월 12일 제헌 헌법을 입법하고, 7월 17일 정식으로 공포했습니다. 7월 20일 간선제로 치러진 제1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8월 15일 광복 3주년을 기념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이승만은 임정법통론을 주장하며 제헌 헌법 전문에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라는 문구를 넣었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제1공화국이 탄생했습니다.

제1공화국은 반공주의를 주요 국가 정책으로 삼아 정권의 입지를 강화했으며, 경찰 및 우익단체와 결탁하여 민간인들을 탄압하고 좌익 세력을 정치적으로 억압했습니다. 대북정책으로 북진통일을 시도했으나, 6.25 전쟁 중 중국 인민지원군의 개입으로 실패했습니다. 결국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북진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이승만 정권은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으로 장기 집권을 시도했으나, 4.19 혁명으로 인해 이승만이 하야하면서 제1공화국은 해체되었습니다.

제1공화국은 역대 대한민국 정부 중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으나, 동시에 가장 넓은 영토를 잃기도 한 체제입니다. 6.25 전쟁 중 북한의 침공으로 영토가 축소되었다가 인천 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북한의 초산, 혜산, 청진까지 차지했으나, 중국 인민지원군의 개입으로 다시 38선 부근으로 밀려났습니다. 전쟁이 휴전으로 끝나면서 휴전선이 그어졌고, 이 상태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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